외환 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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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사진=연합뉴스]

외환 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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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일보
    • 승인 201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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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최운식 부장검사)는 19일 기업 대출금리를 전산 조작해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컴퓨터 등 사용 사기)로 외환은행을 압수수색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대형 시중은행이 금리조작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에 검사와 수사관 10여명을 보내 전산자료와 대출기업 명단, 대출금리 관련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윤용로 행장에게 압수영장을 제시하고 IT 담당자를 불러 2006년부터 작년 9월까지 변동금리부 기업대출 관련 전산자료를 압수했다.

      검찰은 지난주 금융감독원의 통보(수사의뢰)를 받아 수사에 돌입했다.

      외환은행은 전국 290여개 지점에서 6천여 건의 변동금리부 기업대출을 하며 가산금리를 약정금리보다 높게 임의로 전산 입력해 180억원대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은행은 담보·보증이나 신용등급 변경 등 사유가 없는 한 여신약정 금리를 변경할 수 없게 돼 있고, 사유가 생기면 추가 약정을 맺어야 금리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절차를 무시하고 대출기업 몰래 가산금리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외환은행이 본점 차원에서 영업점에 가산금리 조작을 지시했는지, 관련법규상 금지된 불공정 영업행위가 있었는지와 이 과정에 은행 경영진이나 임직원이 주도적으로 개입했는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기업 권익을 침해했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대상은 당시 외환은행을 운영한 경영진"이라며 "조사 진척상황에 따라 금감원이 통보한 수사 대상자들보다 피의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금감원에서 통보된 은행 전·현 임직원 10여명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이 외환은행 외에도 유사한 대출거래 행태를 보인 1∼2개 시중은행으로 수사를 확대할지 주목된다.

      앞서 외환은행은 2006년 6월∼2012년 9월 중소기업 3천여 곳과 여신약정을 맺고 대출 만기 전에 가산금리를 편법으로 인상해 180여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가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금감원은 외환은행이 더 받아낸 중기 대출이자 181억원을 돌려주도록 했으며, 가산금리 부당 인상을 주도한 전·현직 임직원 11명을 징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 유죄 판결이 나온 과천농협 단위조합 사건과 유사한 성격"이라며 "금감원에서 외환은행 기관과 관련 개인에 대한 제재를 한 뒤 검찰에 수사 통보하면서 자료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과천농협 일부 임직원은 2009년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에 따라 대출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임의로 가산금리를 평균 1.68% 인상해 44억여원의 대출이자를 부당하게 받은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외환은행 측은 이날 입장 자료를 통해 "2주 전 론스타 시절의 대출가산금리에 대한 기관경고 및 임직원 징계 사항과 관련해 자료 협조 및 사실확인 차원에서 검찰이 방문한 것으로 압수수색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뉴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주로 취득한 배당금과 주식 매각차익 총 3조4000억원 상당을 외환은행에 물어주라고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이 낸 소송이 최종 각하됐다.

      외환은행 주주인 김씨 등 3명은 론스타가 은행법상 은행 인수자격이 없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외환 이득 인데도 2003년 외환은행을 위법하게 인수해 배당금 약 1조3249억원과 주식 매각차익 약 2조1231억원을 챙겨 외환은행이 같은 금액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며 배상금 약 3조4480억원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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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 대법원. 2018.9.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 서초 대법원. 2018.9.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주로 취득한 배당금과 주식 매각차익 총 3조4000억원 상당을 외환은행에 물어주라고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이 낸 소송이 최종 각하됐다. 각하는 원고 자격 미달 등 절차상 문제로 소송을 반려하는 결정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김모씨가 옛 론스타 측 임원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각하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외환은행 주주인 김씨 등 3명은 론스타가 은행법상 은행 인수자격이 없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인데도 2003년 외환은행을 위법하게 인수해 배당금 약 1조3249억원과 주식 매각차익 약 2조1231억원을 챙겨 외환은행이 같은 금액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며 배상금 약 3조4480억원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냈다.

      1,2심은 "원고들이 2012년 7월 소송 제기 당시엔 외환은행 주식 8만4080주를 보유했으나 소송 중이던 2013년 4월 주식교환에 따라 외환은행 주주지위를 상실, 이 사건 소에 대한 원고적격도 상실하게 됐다"고 각하했다.

      하나금융지주가 2012년 1월 외환은행 자회사 편입을 승인받은 뒤 2013년 4월 김씨 등 소수주주들이 보유한 외환은행 발행주식 40%를 하나금융에 이전하고 소수주주엔 하나금융 신주를 배정하기로 하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실행, 김씨 등이 외환은행 주주지위를 잃은 점을 근거로 한 것이다.

      대법원도 대표소송을 제기한 주주가 소송 중 주주지위를 상실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는 판례를 들고 "그 주주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주주지위를 상실했어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며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외환 이득

      (~2022-07-14 23:59:00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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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감독당국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직후인 2003년 말 외환카드를 흡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주가 조작으로 부당이득을 얻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검찰 등 사법당국이 외환은행의 주가조작 혐의를 인정할 경우 외환은행 최대주주인 론스타는 앞으로 6개월마다 열리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탈락하게 돼 주식 강제매각처분 명령을 받게 된다.

      금융감독당국 고위 관계자는 20일 열린 증권선물조사심의위원회에서 지난 4월 검찰의 의뢰를 받고 착수한 외환은행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를 심의해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외환은행은 2003년 11월20일 외환카드 처리 방향을 다룬 이사회에서 외환카드 감자 가능성을 열어뒀으나 불과 8일 뒤인 11월28일 감자 없이 외환카드를 흡수합병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외환카드 감자설이 퍼진 2003년 11월17일부터 7일 동안 외환카드 주가는 6700원에서 2550원으로 폭락했고 외환은행은 2대주주인 올림푸스캐피탈과 소액주주들로부터 싼값에 주식을 사들였다.

      이에 당시 외환은행이 외환카드의 20대 1 감자설이 퍼지도록 방조한 뒤 외환카드 주가가 단기 폭락하자 합병 조건을 유리하게 이끌며 싼값으로 지분을 매입해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번 증권선물조사심의위원회 심의 내용을 오는 27일 열리는 증권선물위원회에 회부하게 되며 증선위는 주가조작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을 의결하고 조사 결과를 검찰에 전달할 예정이다.

      한편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카드 불공정거래 혐의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의사 결정은 차기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되는 것으로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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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최근 정부 차원에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외환 등 일부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26일 제도 개선에 따른 부작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편입에 성공한다면 시장에 이득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5일 ‘2022년 대외경제정책 추진전략’을 발표해 거래시간 연장과 해외기관 시장 참여 허용 등 외환시장에 대한 개선을 추진하고 MSCI 선진지수 편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국 증시의 이번 MSCI 선진지수 편입 시도는 2008년과 2015년, 지난해에 이어 4번째 시도다.

      그동안 국내 증시가 MSCI 선진지수에 편입되지 못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원화 시장이 24시간 개방돼있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공매도가 부분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방한했던 헨리 페르난데즈 MSCI 회장은 한국 증시의 MSCI 선진지수 편입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역외 원화 거래’를 요구했다. 당시 MSCI 측은 “글로벌 펀드 운용사들이 역외 원화 거래에 불편함을 호소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MSCI는 원화 거래에 더해 국내의 공매도 규제를 지적하며 시장 인프라 항목 중 공매도 점수를 ‘문제없음’에서 ‘일부 문제, 개선 가능’으로 평가했다.

      이같은 MSCI의 문제 제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원화 시장 개선 발표에 이어 한국거래소도 공매도가 전면 재개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25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금융당국과 의견 소통이 이뤄져야 하지만 우리가 선진시장으로 발돋움하려면 공매도를 전면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MSCI 선진지수에 편입이 되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자금 유입의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국내 MSCI 선진지수 편입을 위해 개선되는 2가지 사항의 부작용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오히려 선진지수 편입 이후 얻게 되는 이득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화의 역외거래가 이루어졌을 때 환율 변동성이 커진다거나 하는 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다”며 “하지만 MSCI 선진지수에 포함된 호주나 뉴질랜드의 사례를 보면 24시간 역외거래에 따른 부작용이 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기존 정책 방향성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어 즉각적인 변화보다는 단계적으로 개편하는 등 다른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결론적으로 역외 개방을 하게 된다면 원화의 국제화가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방향성은 좋다고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과거 IMF 경험 때문에 외환에 상당히 예민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그동안 원화 거래가 24시간 이뤄지지 않으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불편함을 겪었기 때문에 이것이 개선되고 MSCI 선진지수에 편입된다면 자금 유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MSCI 선진지수에 편입되는 것이 무조건 이득은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밀하게 계산해 신흥지수에 포함된 현 상태와 유입될 액수 차이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다운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신흥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1% 정도인데 선진지수로 넘어갈 경우 1~2% 사이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시장 규모가 커 단 0.01%에도 유입 자금에 큰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두 지수 각각에 포함됐을 때 어느 쪽이 이득인지는 세밀하게 비교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 연구원은 “현재 신흥지수에 중국A주(상하이·선전 상장주)만 포함돼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다른 주식이 지수에 참여한다면 중국이 (신흥지수에서) 점유하는 비중이 더욱 늘게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국내 증시가 신흥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어 선진지수에 참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MSCI 선진지수와 같은 정책을 거론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선이 진행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분간 (MSCI 선진지수 편입의) 제대로 된 진행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다음 정부에서 이어받을 과제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 이득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지난 1997년 말,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시달린 끝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그는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비상대책팀을 이끈다. 영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일까?

      ‘국가부도의 날’이 실제로 닥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떤 세력이 한국을 ‘사실상 국가부도’ 상황으로 몰아붙였던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다. 불가항력적으로 범한 실수가 결코 아니었다. 매우 거칠었지만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는 의지를 과시하며, 한국인들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드는 함정으로 밀어넣었다. 그 ‘어떤 세력’은 누구였을까? ‘범행’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빌린 돈을 정해진 시일까지 못 갚는 상황을 부도라고 부른다. 개인이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가 100억원을 올해 마지막 날까지 은행에 상환해야 하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국가부도다. 그 뒤에는 아무도 한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일체의 거래 네트워크에서 퇴출된다. 개인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현대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국가부도는 엄청난 참사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은 1997년 말, 외환 이득 한국이 IMF 구제금융 신청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그래도 채권자가 한국 돈(원화)을 사용하는 국내 법인이라면 다행인 편이다. 정부는 자국 통화를 찍어낼 권한이 있다. 부작용이 크겠지만, 한국 정부라면 100억원을 새로 발행해서 은행에 지급하면 된다. 실제로 정부가 국내 채권자에게 빚을 갚지 못해 국가부도를 초래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해외, 예컨대 미국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로부터 1000만 달러를 빌렸다가 못 갚으면 어떻게 될까? 1000만 달러를 한화로 환산하면 대충 110억원. 골드만삭스는 절대 그 110억원을 받지 않는다. 달러로 빌렸다면 달러로 갚아야 한다. 물론 중앙은행(한국은행)에 1000만 달러 이상의 외환이 보유되어 있다면 그 달러를 골드만삭스에 상환하면 된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이 500만 달러에 불과하다면? 외환 부족으로 인한 국가부도 위기가 전개될 것이다.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나라다. 수출입에 경제의 존망이 걸려 있다. 수출입 거래로 주고받는 돈은 원화가 아니라 달러, 유로 등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축통화다. 은행과 기업이 해외 업체들로부터 빌리고(외채) 상환할 때도 기축통화가 사용된다. 즉, 한국 기업이 해외 업체의 물품을 매입하거나 외채를 갚으려면, 갖고 있는 원화로 국내 금융기관에서 달러부터 사야 한다. 그 금융기관 역시 궁극적으로는 중앙은행(한국은행)에서 달러를 공급받는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면 기업과 은행들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원화로 달러를 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달러 없이는 해외의 석유와 소비재, 원자재 등을 매입할 수 없다. 외채를 갚을 수도 없다. 경제주체들이 더 많은 한국 돈을 주더라도 일단 달러를 사려고 몰려드는 와중에 ‘달러의 가격(환율)’은 폭등한다(원화 가치의 폭락).

      이런 사태가 1997년 여름부터 그 이듬해 초까지 동아시아 전역(중국 제외)에서 전개되었다. 그해 8월 타이 바트화의 폭락(바트 대비 달러 환율이 폭등)으로 시작된 외환위기가 인도네시아와 타이완, 말레이시아 등지로 번지더니 가을쯤 한국에 본격 상륙했다. 그해 여름에는 달러당 800원대 후반이던 환율이 10월 말부터 거침없이 치솟더니 11월10일에는 1000원을 돌파해버렸다. 당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이미 100억 달러 이하로 움츠러들어 있었다. 해외 채권자에게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1년 내로 만기가 도래하는 외채) 규모만 250억 달러(한국은행이 12월 중순에 추산)에 이르는 형편이었다. 가진 달러보다 나가야 할 달러가 훨씬 크면 국가부도가 불가피하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달러를 구해 그 공백을 메워야 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연합뉴스1997년 12월3일 임창열 경제부총리(가운데)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오른쪽)는 캉드쉬 IMF 총재(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IMF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하나는, 일본이나 미국 같은 우방국에 국가 대 국가로서 달러를 빌리는 것이다. 좀 높게 책정되겠지만, 이자만 지급하면 된다. 다른 하나는 국제기구인 IMF에서 차입하는 방법이다(구제금융). 김영삼 정부는 어떻게든 IMF 구제금융만은 피하고 싶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IMF의 공식 목표 중 하나는, 외환위기에 빠진 국가에 달러 등 기축통화를 제공해 세계무역을 촉진하는 것이다. 외채로 인한 국가부도 방지다. 그러나 이 조직은 늦어도 1980년대 이후에는 악랄한 빚쟁이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달러를 빌려주는 대신 ‘구제금융 조건’이라는 것을 내걸면서 해당 국가의 경제 시스템을 바꾸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채무자에게 강요하는 ‘신체포기 각서’와 비슷하다. 신체포기 각서에 서명한 채무자는 자기 몸에 대한 천부의 권리를 잃는다. IMF의 채무국은 ‘경제 주권’을 박탈당한다.

      “한국에 돈 빌려주지 마라”

      김영삼 정부는 당초 일본으로부터 달러를 차입하려 했다. 일본은 당시에도 세계 최대의 외환 이득 외환보유국으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엄청난 돈을 투자한 상태였다. 그런 나라들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사태는 일본으로서도 피하고 싶었을 터였다. 당시의 국가부도 위기가 일시적 외환파동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런데 양국 정부가 접촉할 때마다 외환 이득 어떤 세력이 나타나 길길이 날뛴다. 뜻밖에도 한국과 피를 함께 흘린 동맹국, 미국의 클린턴 정부다.

      기자는 외환위기로부터 4년여 뒤인 2002년 봄 김영삼 정부 당시의 최고위 경제 관료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가 털어놓은 경험담. “1997년 11월19일, 일본 미쓰카 히로시 대장성(재무성의 전신) 장관을 만나 협조 융자를 부탁했다. 미쓰카 장관은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며 문서를 보여줬다. 미국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보낸 편지였다. 한국에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되어 있더라.”

      ⓒAP Photo1997년 미국 정부는 한국을 국가부도 상태로 몰아붙였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왼쪽)과 클린턴 대통령.

      그해 11월19일은 국가부도 위기 국면의 분수령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타이 바트화 위기 직후인 1997년 8월부터 거듭해서 일본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일본은 그때부터 미국의 눈치를 봤다. 미국 심기를 거스르면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지원할 용기는 없었다. 그해 9월 초, 일본은 ‘아시아통화기금(AMF)’ 창립을 제안한다. 일본이 1000억 달러를 출연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국제기구다. 일본 정부로서는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국제기구를 통해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방식이 덜 부담스럽다고 판단했을 듯하다. 이 기구가 설립되었다면, 해외의 채권자들은 ‘1000억 달러라는 상환 자금이 보장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아시아에 대한 빚 독촉을 자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도 까다로운 구제금융 조건 없이 필요한 외환을 확보했을 것이다. AMF 설립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9월14일 자정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대장성 국장은 자택으로 걸려온 살벌한 전화를 받는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폴 블루스타인의 저서 〈징벌(Chasten- ing)〉에 따르면, “로런스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이었다. 그는 대화할 분위기가 아닐 정도로 화를 냈다. ‘나는 당신이 내 친구인 줄 알았어…’라며 서머스가 으르렁거렸다.” 결국 일본의 AMF 창립 시도는 좌절되었다.

      미국은, 한국이 외환 파동을 조용히 마무리 짓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돈줄이었던 일본에 대한 압박은, 한국을 어떻게든 국가부도 위기로 밀어넣으려는 적극적 의도를 품고 있었다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은 AMF의 좌절 직후인 10월에도 일본에 협조 융자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다. 결국 IMF 외에는 모든 길이 막혔다. 11월16일, 장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극비리에 방한해 서울시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강경식 경제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등과 만난다. 그 회동의 결과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한국의 IMF행(行)이 사실상 외환 이득 이뤄졌다”. 양측은 사흘 뒤인 11월19일, 한국의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하기로 했다.

      ⓒ연합뉴스1997년 12월17일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시위를 벌이는 한국 노동자들.


      11월19일 아침, 강경식 경제팀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발표 내용을 보고해서 수락받았다. 여기서 급반전이 일어난다. 강경식 부총리 등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경질되었다. 신임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오후 5시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 종합대책안’을 발표하면서 “한국이 IMF에 꼭 갈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으로 급파한 최고위 경제 관료들에게 가냘픈 희망을 걸고 있었다. 미쓰카 장관은 루빈 재무장관의 편지를 핑계로 그 희망을 걷어차고 만다. 미국 정부에 대한 한국의 모처럼의 반항이 하릴없이 최종적으로 꺾이는 순간이었다. 이틀 뒤인 11월21일, 임창열 부총리는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한다.

      11월26일부터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시된 한국 측과 IMF 실무협상단의 주요 의제는 지원금 규모와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구제금융 조건)이었다. 미국 재무부는 데이비드 립턴 차관을 파견해서 노골적으로 협상에 개입했다. 립턴은 아예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고 사실상 협상을 감독했다. 그의 요구는 한국 경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블루스타인 기자의 〈징벌〉에 따르면, IMF 실무협상단은 “한국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에는 소극적”이었으며 “립턴의 수많은 제안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분개하기도 했다”.

      일주일여 지속된 협상의 결과가 12월3일 발표되었다. 구제금융 규모는 550억 달러. 한국 대표단은 협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날 협약서에 서명하러 방한한 캉드쉬 총재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행사 일정표를 잠시 훑어본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협상을 하러 왔다.” 의전 관료들은 땅이 꺼지는 기분을 느꼈을 터이다. 블루스타인 기자에 따르면, 캉드쉬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루빈 미국 재무장관과 통화했다. 그는 미국의 압박 아래 놓여 있었다. 협약서의 구조조정 내용이 미국 정부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IMF를 실효 지배하는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협약서 따위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돈이 실제로 나올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해외 채권자들 처지에서는 그런 협약서를 믿고 한국의 원리금 상환을 연기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따라 협약 체결 이후 한국의 국가부도 위기는 오히려 더욱 격화되었다. 협약 체결일인 12월3일엔 1달러에 1230원 정도였던 환율(원화 대비 달러 가치)이 중순 들어서는 하루 10%라는 믿기 힘든 속도로 올랐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50억 달러 미만으로 줄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자본시장 개방

      한국으로서는 더욱 급진적인 경제 구조조정안을 내놓는 수밖에 없었다. 제15대 대통령 선거 전날인 12월17일, 임창열 부총리는 김기환 경제협력특별대사를 미국으로 파견한다. 김기환 대사가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에게 제시한 ‘IMF 플러스’는, 12월3일의 IMF 협약서에 더 과격한 구조조정안을 추가한 내용이었다. 비로소 만족한 서머스 부장관은 다음 날 립턴 차관을 다시 한국으로 보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이행 여부를 확약받는다. 그 이후에야 미국은 한국에 대한 지원을 다른 선진국들에 시사하면서 협조를 부탁한다. 달러 환율은 12월23일 1995원을 정점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이튿날, IMF는 한국에 대한 100억 달러 조기 지원을 발표했다. 비로소 한국은 국가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왜 그토록 집요하게 한국의 IMF행을 강요했던 걸까? 로런스 서머스 부장관이 반긴 ‘IMF 플러스’ 구조조정안에 정답이 들어 있다. ‘IMF 플러스’의 핵심, 즉 미국이 그토록 원했지만 한국이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놓지 못하고 망설인 것은 자본시장 개방이었다. 한국의 자본시장(주식과 채권을 거래하는 시장)은 외국인에게 1997년까지 닫힌 상태였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 보유 한도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특정 대기업 주식 중 25% 이상을 매입할 수 없었다. 외국인이 대기업 경영권(원칙적으로는 50% 이상의 지분이 필요하다)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하는 장치다. ‘IMF 플러스’로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외국인도 한국 기업의 주식(과 경영권)외환 이득 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경영자나 주주의 의사와 상관없이 특정 기업을 인수하는 적대적 인수합병도 허용되었다. 외국인이 한국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자유롭게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게 하려면, 외환관리법도 전면 개정되어야 했다. 외국인이 기업을 인수한 뒤 대량해고 등으로 그 가치를 높여 되팔려면 정리해고 자유화도 필수적 장치였다. ‘IMF 플러스’로 추가된 조항들이다.

      한편 IMF는 기업 부채비율을 낮추고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개혁도 추진했다(김대중 정부가 ‘부채비율 200%-BIS 8%’로 구체화). 당시 한국의 주식시장은 그리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기업들은 주식 발행이 아니라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 기업의 (은행)부채비율이 400~500%로 꽤 높았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지나치다고 여겨질 만큼 많이 투자했다(과잉투자). 1990년대 초·중반에 경제성장률 7~9%와 0%에 가까운 실업률을 달성했던 비결이기도 하다. 당시의 은행 역시 기업 대출에 주력했으므로 BIS 비율이 2~3% 수준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 BIS 비율은 은행이 ‘위험 투자’를 많이 할수록 낮게 평가되는데, 기업 대출은 미상환 가능성이 높은 위험 투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BIS 비율을 높이려면 주택 등을 담보로 잡고 가계 소비에 대출하는 것이 최고다. 이런 상황에서 ‘부채비율 200%-BIS 8%’의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기업은 주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은행은 기업 대출을 대폭 줄여라.” 이로써 당시까지 한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이었던 은행-기업 관계가 해체되었다. 빌려서 많이 투자하던 기업 경영 관행도 끝났다.

      기업집단들은 계열사 주식이나 회사 자체를 매각해서 마련한 돈으로 은행 부채를 갚아야 했다.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다. 마침 IMF의 요구에 따른 고금리 정책으로 1998년 들어 시중 단기금리가 연간 20~30%에 달할 때였다. IMF의 명분은 금리를 극도로 높게 설정해야 달러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높은 금리는 1차적으로 기업 운영과 가계를 위협한다. 경제주체들은 현금을 구하기 위해 주식, 부동산 등 보유 자산을 마구 시장에 내다팔았다. 이로 인해 자산 가격이 대폭 떨어졌지만, 그 시장에서 매수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은 외국자본밖에 없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이나 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50% 가까이 올라간 것은 이때부터다.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을 때 유력한 용의자는 그 사건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클린턴 정부가 한국을 국가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이유 역시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다. 미국 경제의 축이 금융산업으로 이동 중인 시기였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들은 미국 재무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루빈부터가 미국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공동회장 출신이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씨티그룹 회장을 지냈다. 금융산업이 수익을 내려면 ‘장사’할 곳과 상품이 많아야 한다. 월스트리트에게 한창 고성장 중이던 한국 등 동아시아의 자본시장은 무척 탐나는 제물이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자본시장을 닫고 있었다. 투자하고 싶은데 투자할 수 없다. 어떻게 개방시키지? 미국 정부는 그 수단을 갖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당한 국가에 달러를 빌려주는 대신 경제구조 변혁의 권한을 얻는 IMF다. 미국 클린턴 정부에겐 동기와 수단이 모두 존재했다. 블루스타인 기자는 미국 정부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미국 재무부의 해외 담당 부서는 오래전부터 금융부문 개방을 한국에 요구해왔다. 해외 은행의 한국 진출은 물론 한국 기업이 해외 금융시장에서 자유롭게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외국인들이 구입할 수 있는 주식 비율 한도도 확대하라는 것이었다. 재무부의 한국에 대한 압력 뒤엔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미국 금융기관들의 로비가 있었다.”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이후 21년이 흘렀다. 그 무서웠던 시간 역시 〈국가부도의 날〉 같은 영화로 만들어져 역사적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크게 늘렸다. 지난 9월 말 현재 4030억 달러로 세계 8위다. 일종의 보험이다. 지금도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금융자본주의 질서에 포섭되었다. 한국 기업들의 최고 경영 목표는 어느새 성장보다 ‘주식 가치 높이기’로 바뀌었다. 기업 주식이 자유롭게 사고 팔리며 누구든 돈만 있으면 경영권을 획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재벌들 역시 주식 가치 올리기에 골몰하게 되었다. 주주의 인기를 얻어야 경영권도 유지할 수 있다. 대신 총투자율이 떨어지면서 경제성장률과 고용률은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했다. IMF와 국내 개혁파 경제학자들은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한국 기업들의 방만한 과잉투자를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지나치게 투자하는 편이 아니었다면 고도성장과 외환위기의 빠른 극복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이제민 연세대 교수는 저서 〈외환위기와 그 후의 한국 경제〉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외환위기 이전의) 설비투자는 결국 (외환위기 이후) 생산과 수출 능력을 늘려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바탕이 되었다. 한국은 그때의 투자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면서 외환위기로부터 탈출했던 것이다.”

      노동시장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훨씬 불안해졌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노동시장 유연성이 커지니 중산층이 해체될 수밖에 없다. 2018년의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다.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패권국가의 의도에 외환 이득 따라 한국과 그 시민들의 운명이 삽시간에 바뀌었다는 점이다. 패권국가가 어느 나라든 앞으로 그런 시도가 다시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은 지금 중국에 대해 일종의 ‘경제구조 변혁’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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